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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주제 보편적인 감정으로서의 인류애
작성자 박상현 조회수 2520
작성일 2010.11.29

보편적인 감정으로서의 인류애


박상현 (경희사이버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한국인에게 일본이란 무엇인가

 

 

금년(2010년)은 경술국치(庚戌國恥)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1910년으로부터 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적지 않다. ‘역사’에 대한 ‘기억’의 차이가 그것이다.

1990년대 초의 일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필자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과 언어교환을 하고 있었다. 즉 필자는 일본인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일본인 유학생은 필자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주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우리들은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경로석 근처로 발을 옮겼다. 필자는 일본어 연습을 할 생각으로 잘 못하는 일본어로 일본인 유학생에게 열심히 말을 걸었다. 일본인 유학생은 일본인 특유의 맞장구를 쳐가며 성실히 대응해 주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바로 그때였다.

일본어를 쓰려거든 일본으로 가라! 어디 한국에서 일본어를 쓰냐! 쪽발이는 일본으로 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의식적으로 필자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서 있던 근처의 경로석에 앉아 있었던 어떤 할아버지가 우리들을 보고 있었다. 순간 필자와 일본인 유학생의 얼굴은 동시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무슨 큰 범죄라도 지은 범법자가 현장에서 경찰에게 발각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들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나무처럼 굳어 버렸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우리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도중에서 그만 내리고 말았다.

지금이라면 이런 ‘광경’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필자가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까지는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집이나 강제노역을 당했던 당사자였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당사자였다면 그 심정 곧 일본(인)에 대한 ‘증오심’은 충분히 이해하고는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일본이나 일본인에게 이런 ‘증오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언론인인 김효순은 어느 신문에서


일본도 자국민 피랍 문제의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 공작원의 일본인 납치가 개탄스런 일임에 틀림없지만 피해 정도를 따지면 식민지 지배 피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납치 문제’를 단지 숫자의 비교로 파악하는 이런 ‘인식’으로는 한?일 간의 문제는 영구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평화주의의 대부’라고 평가받는 사카모토 요시카즈는 일본에서 북한의 납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조총련이 발행하는 ‘조선신보’와 인터뷰를 했다. 거기서 그는 딸의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일본 외무성에 건의한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자신의 자식이 걱정된다면 식량이 부족한 북한 어린이들의 어려움을 가슴 아파해 원조를 보내는 게 당연하다.


지금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사카모토 요시카즈와 같은 ‘인식’이 아닐까?


*


지난 침략 전쟁 때 일본인은 ‘가해자’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피해자’였다. ‘가해자’로서의 ‘일본인’만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로서의 ‘일본인’에 대해서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로서의 그들의 아픔에 ‘공감(共感)’할 수 있는 마음이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보편적인 감정으로서의 인류애다.


일단 우리부터 일본 그리고 일본인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 다음에 그런 보편적인 감정으로서의 인류애를 일본(인)에게도 바라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주장했던 ‘동양평화론’(안중근,「동양평화론」,『동아시아의 ‘동양’ 인식 : 19-20세기』수록, 문학과지성사, 1997년 12월)과 같은 ‘동북아시아공동체’를 만들자고 그들에게 권유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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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졸저『한국인에게 ‘일본’이란 무엇인가』(박문사, 2010년 3월. 2010년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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