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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주제 학문으로서 융합, 연구로서 융합?
작성자 강장묵 조회수 7184
작성일 2013.08.09

 

학문으로서 융합, 연구로서 융합?

강장묵

고려대학교 사범대 (정보창의교육연구소)

 

 

융합이란?

 

융합 (convergence)이라는 말이 화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사전적으로 융합 (融合)이란 ‘녹아서 하나로 합침’으로 핵융합 등과 같은 물리반응을 일컫는 말이다.

정보 통신 기술 (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분야에서의 융합이란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서부터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방송과 통신은 서로 주도권을 놓고 싶지 않아, 통신 분야의 전문가들은 ‘통·방 융합’이라 부르고 방송 분야의 전문가들은 ‘방·통 융합’이라고 주장하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 방송과 통신은 인터넷 소통 원리 TCP/IP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방식으로 바뀌었다. TCP/IP란 인터넷의 통신 규약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약속이다.

방송과 통신이 과거에는 정보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특정 길을 열어 놓고 대화를 주고받은 후 그 길을 닫는 방식이 었는다. 반면 TCP/IP라는 통신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오늘날 융합된 방송과 통신은 방송을 시청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 때 마다 특정한 길을 정하고 정보를 보내지 않는다. 즉, 과거에는 단대단 (end to end) 회선 교환 (서킷 교환, Circuit switching) 방식이 주류였다면 지금은 패킷(Packet) 교환 방식이 대다수이다.

패킷을 중심이로 방송과 통신 그리고 여타 미디어 정보가 소통하는 융합 세상이 도래하자, 과거의 시장 경쟁우위와 비용 그리고 법제가 모두 도전을 받게 되었다. 즉 패킷 중심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질서와 규범 양식이 요구된 것이다.

2013년 KT는 삼성의 스마트 TV를 차단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망중립성 이슈가 불붙기 시작하였다. 그 후 망 사업자 (KTF, LG-U+, SK 등)가 카카오 음성서비스를 차단하면서 망 중립성 문제는 전 국민의 관심으로 확산된다.

기존의 통신 회사들은 무선 음성 통신(4G가 되어 진정한 패킷 시대로 전환)과 데이터 통신 등에서 과거 영업 이익과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망의 중립성을 훼손했다. 통신 시스템이 인터넷망으로 융합되었을 때는, 유선 통신망에서의 시장 원리가 아닌 인터넷 망에서의 시장 원리와 여타 기준을 세워나가야 함에도 망의 중립성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일련의 사건이었다.

이처럼, 융합은 단순히 기술적인 결합 또는 새로운 서비스의 창출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시장질서나 기술 환경에서 성공을 꿈꾸는 세력 간에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망 중립성 문제가 인터넷 거버넌스 (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구조의 총체적 관리 시스템 또는 지배구조, 인용: 두산백과 사전)로 확대되고 있다. 방송과 통신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각 분야가 인터넷 망으로 수렴됨에 따라, 모든 문제를 인터넷 환경에서 풀어 나가야하는 새로운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융합의 범위는?

 

융합의 말뜻 그대로 녹아서 하나로 합치는 것을 뜻하는데, 주로 화학적인 융합을 뜻하였다. 마크 롤스톤 (Mark Rolston, Chief Creative Officer)은 2013년의 기술 사조 (www.frogdesign.com)에서 인간과 컴퓨터 간의 상호작용은 보다 인간적으로 진화한다고 보았다. (검색: http://www.slideshare.net/frogdesign/2013-tech-trendspresentation)

사용자 인터페이스 (UI ; user interface) 기술은 사용자 경험 (UX; user experience)로 발전하였고 최근에는 인간 친화적 또는 인간의 신체 일부분처럼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융합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융합이 컴퓨터와 사람 간에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로 입는 컴퓨터가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림> 상용화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는 웨어러블 컴퓨터, 마스크 형태로 공기의 오염 상태를 알려주는 기능을 갖는 웨어러블 컴퓨터

출처: http://blog.naver.com/youngdisplay?Redirect=Log&logNo=60188375044

 

융합 기술이 사람과 기계가 녹아서 하나로 합치는 지경에 다다르다 보니, 인간성(humanity)에 대한 연구가 중요해졌다. 즉 과거 컴퓨터는 인간이 배우고 익히고 따라가야 하는 대상 이였다면, 지금의 기계는 스스로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어주고 인간의 보폭과 언어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변화하고 있다.

융합 기술은 친인간적인 기계의 등장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생활밀착형 서비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융합에 따라 성장하는 산업과 직업 그리고 학문이 등장하게 된다.

초기 컴퓨터의 발전으로 엔지니어가 각광받았다. 컴퓨터의 발전 속도가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자, 이를 도구적으로 활용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과학자들의 특정 학문 (MIS 등)이 발전했다. 지금은 디지털 인문학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융합의 영역은 기계와 인간의 합치뿐만 아니라,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 등 각 분야에서 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바이오와 정보의 융합이다. 의공학이 융합 분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노, 문화기술 등 새로운 용어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융합에 발맞추어 새로운 학과나 학문이 태동하고 대규모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과연 융합은 새로운 학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학문으로서 융합, 연구로서 융합이란?

 

태초에 학문은 철학과 종교 등 몇몇 분야에 그쳤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학과와 학문 분화가 이루어진 것은 근래에 이르러서이다. 따라서 과거 현인들은 대학의 전신에서 인간의 전인격적인 교육과 총체적 지식을 전달하는데 애썼다. 지금처럼 세분화된 고도의 지식을 전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업화 또는 전문화를 통해 개별화된 전문가 및 고도 지식 간의 연결이 유기적으로 되지 않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축구가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듯이 모든 학문과 전문가 역시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특히, 네트워크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더욱 복잡해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지금이 세분화된 교육방식과 인재로는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그리고 자기 세계만을 깊이 있게 알게 되면, 주변 세계와의 충돌할 기회가 줄어들어 상상력과 창조적 발견이 어렵기도 하다.

즉 모방은 잘해도, 창의적 제품과 서비스는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융합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되거나 일생을 다해도 한 가지 학문을 학습하기도 어려운 시대에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이상의 학문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있다. 대학교에서 복수전공을 하였다고 융합형 인재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융합은 두 가지 또는 세 가지를 가져다가 버무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융합은 융합전문가를 통해 이질적인 두 학문 또는 생뚱맞은 두 가지 영영에 창조적 스파크 (spark)가 일어나야 한다. 진정한 융합 전문가는 불꽃을 일으키는 학문간 촉매자이다. 그러나 오늘날 융합은 학문 간의 이합집산에 가깝다. 2018년이 되면 대학생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이미 학생들이 특정 어문학 등의 인문학을 선택하지 않자, 고육지책으로 디지털 융합을 시도한다. 미국의 MIT 등의 미디어 랩에서는 자연발생적으로 공학적인 생산물을 만드는데 철학자, 종교학자 등을 영입하여 우수한 연구 성과를 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학부/석사/박사의 동일전공과 심지어는 학부/석사/박사의 동일 대학 출신을 선호한다.

융합이라는 거창한 표어를 떠나, 학문하는 사람이란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면서 진리를 추구해야한다. 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엄격한 연구 윤리가 준수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융합이라는 깃발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미 자유로운 학문간 교류를 위해 새로운 영감과 지식으로 무장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이미 해외의 디지털 인문학 외 융합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융합이라면 BT (Bio Technology), NT (Nano Technology), CT (Culture Technology) 등과 같은 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인접한 학문 간의 결합이다. 그렇다보니, 학자 사이에서도 융합은 ‘체계적 검증이 마쳐진 학문인가? 진정한 학과인가? 아니면 한 시대를 풍미한 트렌드 즉 연구 주제 수준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그 해답을 묻기 앞에 융합이 우리 사회에 현상적으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는 긴 안목으로 융합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도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편에서 이에 대해 소개하겠다.

 

 

 

                                                                                   강장묵 교수(고려대), 공학박사

                                                                                   (이메일 : kangjm@korea.ac.kr    mooknc@gmail.com)

 

 

저자는 차이가 차별로 구조화되는 사회를 반대한다. 질투는 나의 힘이다. 염장질은 나의 버릇이다.

날마다, 창조적 조응을 통한 매혹을 그린다.

지루한 사람 곁에는 하품을, 어딘가 꼬여 부정적인 이에게는 안쓰러움을, 직급만 믿는 이에게는 거품 물방울을 뿌리며 산다.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고, 물질보단 열정을 쫓는다. 느낌표가 그리울 땐 여행을 간다. 아이디어를 발견하면 글을 쓴다. 틈틈이 특강, 심사, 포럼을 하며 얇은 지식의 표상들에게 비수를 꽂는다. 사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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