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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주제 살아남은 프로페셔널의 슬픔
작성자 강장묵 조회수 6478
작성일 2013.08.30

 

살아남은 프로페셔널의 슬픔

강장묵

고려대학교 사범대 (정보창의교육연구소)

 

 

살아남은 프로페셔널의 슬픔

 

‘열 재주 있는 사람 끼니 걱정 멈출 날이 없다‘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은 재주가 아무리 많더라도 밥 벌어 먹는 재주는 전문화, 고도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어중간하게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해서는 굶어죽기 십상이라는 염려도 내포되어있다.

열 재주를 가진 죄는 혼자서 짊어지지 않는다. 이 속담은 결국 ‘열 재주 가진 사람이 처자식 굶긴다.’는 말로 발전하면서, 가족 전체를 위협한다. 이 말이 내포한 은유는 ‘이것저것 어설프게 호기심 가지고 기웃거리지 말고, 한 가지만 집중력을 가지고 열심히 하라’는 잘라 말하자면 자녀 훈계용으로 까지 확대되어 사용된다.

우리는 이런 속담에 빗댄 ‘재주 많은 이’에 대한 시기와 비아냥거림이나 가족이 가난하다는 사실이 아버지의 재능 많음이라는 핑계거리를 한번쯤 들어보며 성장했다.

이 말이 고도 산업사회의 프로페셔널 (professional;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 참조:http://endic.naver.com/enkrEntry.nhn?entryId=a31f92c479b2487198646fca24ec015d)을 양성하는데 기여는 하였으나, 수 많은 청소년의 호기심을 단절시켰다.

또한, 우리 사회가 지금 찾고 있는 성장 동력원, 호기심과 창조성의 씨를 말리고 사회 전체 시스템에 대한 통찰력과 조망능력을 상실하게 하였다. 결국, 우리는 이기적으로 자신의 전공분야만 잘 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에 매몰된다.

아니 관심을 가져도 다른 분야에 전문성으로 무장된 이들의 논리에 맞설 수 없다는 열패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닭장 속 알 잘 낳는 닭들만 만들지’는 않았나 반성이 필요하다.

 

 

프로페셔널 간의 소통 부재

 

융합을 주창하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예를 들어 A전공자가 B분야에 기웃거릴 수도 없을뿐더러, 심오한 A와 B 두 전공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 역시 불가능한 현실이다. 따라서 프로페셔널 간의 소통 자체가 막혀있고 그럴 필요가 없던 시대를 오래 동안 살아온 것이다.

이제 봇물처럼 융합을 외치는 소리가 도시 곳곳에 넘쳐난다. 과연,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공 간 통섭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융합과 통섭을 다루기에 앞서 앞의 속담 (‘열 재주 가진 사람이 처자식 굶긴다.’)이 가진 함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이 속담은 상상력을 말살한다.

아니 호기심을 가져도 한가지에만 집중하라는 암시를 준다. 동시에 호기심을 서 너 가지로 갖는 순간, 한 가지도 잘 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을 준다. 재주 많은 사람들이 도처에 넘쳐나서 이곳저곳 문지방을 넘어보고 저마다 밥 먹고 사는 ‘그들만의 리그 (league)’에서 밥그릇의 질서를 바꾸고 프레임을 새롭게 제안하는 말 자체가 감히 입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한다.

즉 사회 구성원 개개인과 모두가 참여하는 브레인스토밍 (Brain-Storming; 한 가지 문제를 집단적으로 토의해 제각기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가운데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도출된다는 아이디어 창출방법)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내가 먹고 사는 분야 외의 상상력은 고갈되고 호기심은 금기시 된다.

 

둘째, 상상력과 호기심이 내 전공 분야 외로 확장될 수 없는 사회에서 융합은 어불성설이다.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도시 전체를 가득 메우지만 정작 내용을 보면, 비슷한 전공끼리의 이합집산이다. 가끔 깜냥으로 다른 전공이나 말도 될 법 없는 전공 하나 구색 맞추기로 넣어둔다. 더 재미난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프로페셔널이 되어야만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 남는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다른 전공자와 대화하는 소통의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점이다. 소통 자체가 안 되니, 융합의 채널을 힘들게 열었다고 해도 그 결과는 그 밥에 그 나물이 된다. 지금 융합은 진정 새로운 개념과 가치를 찾는 도전의 여정인가? 약발 떨어진 학문과 빛 바랜 산업에 새로운 포장지만 덮어주는 샘인가?

 

셋째,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저해하는 프로페셔널의 도그마이다.

한 가지 일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은 애호가 정신 즉 경제적 이익을 떠나 교양으로 풍미하는 삶의 다채로움을 차단한다. 분업화 사회가 고착되면서 공장 폐수와 산업 폐기물만 배출된 것은 아니다.

산업사회는 생각하는 인간을 말살하고 교양 없는 일상을 더해, 도시인의 삭막하고 빠듯한 매너리즘(mannerism;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 참조: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12975900)을 부풀려왔다.

이런 고도 전문화 사회에서 내가 잘 하지 않는 다른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그들과의 소통은 사회 특정 계층에게만 허락된 교양으로 전환된다. 다수 시민은 기계 속 부품처럼 소외되거나 창의적이지 못한 쳇바퀴의 일상을 구가한다.

가수 아바(ABBA)의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평범한 사람은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 약육강식의 피해자가 된다.

결국 교양은 사치스런 승자의 향유물이다. 평범한 시민은 ‘무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더 집중하고 더욱 노력하고 분발해야 한다’는 자기반성을 강요당한다. 즉 시민들의 애호가 정신, 아마추어리즘은 사라진다. 시민들이 스스로 가정용품 등의 제작과 수리 그리고 장식을 하는 것( DIY: do-it-yourself)이 장려되고 허점투성이인 평범한 개인이 창조적 융합을 시도하는 동력, 아마추어리즘이 사라지는 것이다.

융합은 호기심과 반응 그리고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도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는 뻔한 결합은 넘쳐나도, 생활 속에서 반짝이는 융합 더 나아가 생각의 반전을 가져오는 융합은 드물다.

낯선 경험에서 오는 충격과 신선한 발견이 융합되어야 할 대상이다.

융합은 한명의 전문가를 뒤받쳐주는 무수한 루저(loser)의 양산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전문가의 도움과 존경을 받는 애호가의 양성에 있다. 따라서 모두가 일등 전문가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하는 강박관념에 빠진 사회는 진정한 융합의 모태가 자리 잡을 수 없다.

 

 

관계의 피로감이 덜한 융합 사회

 

농경시대를 거쳐 산업시대로 발전하면서, 우리 사회는 공장 생산라인의 부품처럼 고도로 정밀해졌다. 사람들은 두서너 가지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공 한 가지만 심도 있게 연구하면 되었다.

반면, 융합은 다른 전공을 학습할 뿐만 아니라 제3의 전공까지를 이해하는 총체적 관계에 기반을 둔다. ‘전문가’보다 ‘융합가’는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 사회는 한 번의 실패나 변변치 못한 결과를 보인 개인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제한된 자원으로 투자 선택을 할 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융합 능력이나 창의성보다는 엘리트에게 자원을 집중시켜 국가와 사회를 부흥시키는 것이 바람직해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풍토에서 한 가지 분야에 전문성을 갖기도 어려운데, 두 가지를 한다는 것은 도박이다. 융합은 옆 세계 특히 이질적인 공간을 엿보면서 시작된다.

우리나라 금수강산 좋은 나라라고 주구장창 노래 부르던 갑순이가 스위스의 동화같은 풍광도 보고 하와이의 신비로운 자연도 경험할 때, 비로소 융합은 시작된다. 그리고 금수강산, 동화같은 풍광, 신비로운 자연을 이해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 시작한다면 갑순이는 융합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융합은 이질적 세계의 관계 맺기로 첫 걸음을 딛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갑순이의 머리 속에 ‘금수강산의 돌과 스위스의 물 그리고 신비로운 자연의 공기를 융합한다면 어떨까? 그런 사업은 무엇이 있을까?’ 라는 생각의 물코가 터질 때, 융합은 몇몇 전문가의 손에서 놀아나는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된다.

당토 않는 호기심 세상, 아마추어들을 지원하는 여럿 전문가들이 공존하는 시대가 올 때, 융합이 기발하고 발칙한 무엇으로 거듭날 것이다.

 

 

 강장묵 교수(고려대), 공학박사

                                                                           (이메일 : kangjm@korea.ac.kr    mooknc@gmail.com)

 

 

저자는 차이가 차별로 구조화되는 사회를 반대한다. 질투는 나의 힘이다. 염장질은 나의 버릇이다.

날마다, 창조적 조응을 통한 매혹을 그린다.

지루한 사람 곁에는 하품을, 어딘가 꼬여 부정적인 이에게는 안쓰러움을, 직급만 믿는 이에게는 거품 물방울을 뿌리며 산다.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고, 물질보단 열정을 쫓는다. 느낌표가 그리울 땐 여행을 간다. 아이디어를 발견하면 글을 쓴다. 틈틈이 특강, 심사, 포럼을 하며 얇은 지식의 표상들에게 비수를 꽂는다. 사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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