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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주제 스마트폰없이 스마트하게 살기
작성자 강장묵 조회수 6450
작성일 2013.12.24

 

스마트폰없이 스마트하게 살기

강장묵

고려대학교 컴퓨터교육학과 (정보창의교육연구소)

 

 

면대면/음성통화에 대한 편견

 

얼마 전 모 사이버 대학교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도구를 연구하기 때문에 연결자체가 안 된다는 질문에 놀랐다.

‘메일 주소가 잘못되었는지? 메일이 서버 용량 과다로 리턴되는지? 그 흔한 카카오톡, 마이피플, 밴드, 미투데이로 실시간 메신저 기능이 안 되는지?’ 궁금해서였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휴대폰이 없다는 것이다.

엄격하게 말해 ‘지금 당장 너의 목소리를 듣고 확인받아야 하는데, 그때 연락이 안 된다’는 뜻이다.

순간 ‘내가 당장 연락하고 의견을 주어야할 만치 중요 인물이었나.’부터 ‘모 사이버 대학교에서 하고 있는 일이 당장 전화를 받지 않으면 주변에 불편을 끼칠 그 무엇이었나?’로 반문이 꼬리를 이었다.

내 복잡함과는 달리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담당자는 휴대폰이 제일 보편화된 도구이고, 따라서 휴대폰이 없으면 연락이 잘 안 되는 사람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런 편견은 사이버대학교가 생겨날 때에도 존재했었다.

마치 ‘교육은 면대면(face to face)로 가능하지, 사제 간에 만남도 없이 무슨 지성인을 가르치나?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라면 면대면으로 인격이 전달되야 하는 것 아닌가? 원격으로 시험감독, 전산실습 등이 가능한 일이냐? 졸고 있으면서 동영상만 플레이하는 학생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염려와 편견은 지금도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편견과 지나친(?) 염려 그리고 복잡함이 싫은 행정편의주의 발상들로 보다 열심히 창의적으로 일해야 할 사람들이 주눅들고 움찔하게 된다는데 있다. 심기가 약해, 비난에 흠찔한 경우 십중팔구, 하이브리드 째즈 퓨전 뭐 이런 보완적 대체물로 본원적 가치를 훼손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사이버대학이 사이버스러워야 하고 최근 각광받는 세컨드라이프나 테드나 컴퓨터 매개의 다양한 인터렉션을 지향해야할 터인데, 가상대학이 오프라인대학 흉내 내기에만 급급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사로운 이야기를 주제로 삼을 만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휴대폰의 폭력성을 이해하고 소통의 채널을 다양하게 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어떤 한 가지 소통 도구를 가지지 않았다고 하여 비난과 편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낙엽 타는 냄새를 맡을 여유가 없는

 

단언컨대 문명의 이기는 이용자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이용자들의 일상으로 스며든 문명의 이기는 변화를 가져온다. 변화는 개인과 집단 그리고 사회로 확장된다.

개인의 경우 그 행동이 축적되면 습관이 되고 라이프스타일이 된다. 사회는 어떤가? 개인의 집합적 행동들이 모여 문화가 되고 양태가 된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누군가 약속장소에 늦는 경우이다.

‘뭐해 빨리 빨리 휴대폰 전화 걸어봐!’

‘어디 있는지 당장 전화해봐’

늦은 사람이 문제이겠지만, 사실 조바심을 내게 되는 이들이 문제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조바심과 다급함은 주변을 바짝 긴장하게 하고 괜한 피로감을 준다. 기피하고 싶은 대상인 것이다.

필자는 삐삐가 횡횡하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바로 바로 확인하는 편리함은 없었지만, 황지우 시인이 노래하였듯이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기다림이 자연스러웠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이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 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이여

오지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 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휴대폰이 폭력적일 때?

 

이런 사연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성격 급한 상사나 전화를 걸었을 때 받지 않으면 따지는 직장동료와 일을 할 때, 잠깐 휴대폰을 진동/무음 또는 가방 깊숙이 두고 온 날에 느끼는 괜한 쫓김과 덩달아 조급해졌던 사연 말이다.

직업이 기자이거나 긴급을 다투는 몇몇 경우에는 ‘화장실에도 휴대폰을 가지고 가서 일을 보아야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이쯤 되면 휴대폰은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신경쇠약에 가깝다.

심지어 휴대폰 번호는 사적 정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만나면 통성명하듯이 드러내고 공유해야하는 무엇처럼 느껴진다.

휴대폰을 통해 듣게 되는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디야?’로부터 시작되는 이 바짝 마른 이야기들은 무척 공격적이다.

최근 화제가 된 셰리 터클의 ‘Alone Together’가 다룬 SNS에서의 외로움이 발생하는 이기심 못지 않은 이기심이 있다.

당장 급할 때 바로 바로 연락하고 즉답을 얻어내는 습관은 사회를 점점 빠르게 만들지는 몰라도 사려깊게 하지는 못한다.

필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관련 특허와 연구를 수행하는 입장이어서 많은 애플리케이션을 다양하게 경험해야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아이패드를 구입하여 데이터 통신을 하니, 정말 관리해야할 계정부터 서비스가 다양하였다. 각양각색인 이 계정과 서비스를 쓰다보면, 책 한권 마음 편히 읽기가 쉽지 않아지는데 집중을 깨는 주범은 휴대폰 벨소리이다. ‘카톡! 카톡’ 거리는 소리는 무음으로 바꾼 후, 한 참 뒤에 보고 답을 올려도 글을 보내는 상대가 이해를 한다. 잠깐 자리를 비웠구나! 반면, 휴대폰 전화는 실시간으로 응답하고 즉답을 하게 한다. 메일이나 메신저를 하게 되면, 한번쯤 쓴 글을 지우기도 하고 되돌아 가기도 하고 ‘화’를 다스리고 다음날 차분히 글을 쓰기도 한다.

반면, 전화통화는 되돌릴 수도 어감과 톤에서 주는 묘한 감정선까지 배려하는 일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러함에도 휴대폰 전화를 없애기까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휴대폰이 없으면 꽉 막혀버리는 경직된 사회는 아닌지

 

사회는 다양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사람이 저마다의 모습이듯이 인간의 삶은 저마다의 길이 있다. 다양성은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대상이 아니다. 서로 이해하고 조정하고 맞추어 가는 것이다.

소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휴대폰은 음성통화로 급한 경우에 그리운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경우에 가능하다. 메신저는 여타 단문을 비밀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다. 이모티콘으로 감칠맛이 날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거리 곳곳에 무선랜이 설치된 우리나라에서는 스카이프, 카카오톡, 페이스타임 등 음성 및 영상 통화도 가능하다.

휴대폰이 막히면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대부분의 주장은 사실 거짓말이다. 대체재가 얼마든지 다양하게 등장하였고 음성통화/화상통화도 가능하다.

휴대폰이 없으면 당장 불편한 것이 많다. 필자의 경우 첫째, 휴대폰으로 연락이 오던 기자들의 전화 인터뷰가 줄어든다. 상당히 미안스러운 부분이다. 둘째, 휴대폰으로 연락이 오는 심사/평가 등이 줄어든다. 셋째, 휴대폰으로 인증을 하면 편하고 쉬운데 사실 여타 다른 인증으로 바꾸거나 번거로운 절차가 늘어난다. 넷째, 휴대폰 번호가 없다면 회원 가입이 안 되거나 전자상거래에 본인인증이 복잡해진다. 다섯째 초면의 누군가에게 당연히 주어야할 전화번호를 주지 않아 괜한 오해나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여섯째, 휴대폰을 자주 꺼두거나 받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빚을 졌나?’라는 우스갯 소리도 들어야 한다.

사실 휴대폰 하나 없는 것 뿐이고, 아이패드와 아이패드 미니 그리고 맥에어로 상시 연락이 되는 필자에게 휴대폰 없음은 일감이 줄고 여차 저차 피곤해지는 것이다. 생각해본다.

소통의 한 채널을 버렸을 뿐인데, 받게 되는 오해와 편견 그리고 불이익이 이렇게 큰데...

우리나라라는 사회에서 이혼을 하였거나? 에이즈에 걸렸거나? 정신적인 병력이 있거나? 학벌이 좋지 못하거나? 고등학교만 졸업하였거나? 등과 같은 차이는 얼마나 큰 차별과 편견을 불러올 것인가?

사회가 갖는 이 문화적 폭력성은 시민의식의 문제인가? 폭력에 익숙해지고 경쟁에 길들여져서 안녕하지 못하면서도 안녕하다 생각하는 불감증인가?

 

스마트폰 없이 스마트하게 살기

 

로봇을 연구한 일본의 모리 마사히로(MasahiroMori) 교수는 언캐니 밸리라는 곡선을 제안하였다. 이 곡선은 로봇 연구 중 로봇과 인간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에 큰 함의를 주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로봇에 대한 인간친화성 기술의 도입과 호감도의 관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처음에는 인간다운 로봇에 호감이 가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져서 심하게 인간다워진 로봇은 비호감이라는 것이다.

 

(그림) 언캐니 밸리 곡선

출처: Mori, M. (1970). Bukimi no Tani Genshoo [the uncanny valley]. Energy, 7, 33-35.

(검색일:2013.12.)

 

이 이론은 사회 여러 부분에 설명이 가능하다. 필자는 가끔 성숙한 어린이가 나와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아이가 어른같이 말해서 신기하고 좋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너무 조숙하게 말하는 어린이가 징그럽게 느껴진다.

오늘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화두는 UX이고 이 UX는 인간 친화적인 그 무엇이다. UX를 연구하거나 개발하는 사람들은 로봇과 인간 간의 관계에서 보다 인간적인 기능과 설계를 도보한다. 그러나 모리 마사히로 교수가 제안한 것처럼 어느 시점에서 ‘좀비’처럼 보이고 오히려 비호감을 유발하고 피로하게 느껴질 수 있다.

기술에 대한 의존 그리고 기술에 대한 활용은 필요하다. 휴대폰은 인류가 만들어낸 도구 중 가장 몸에 바짝 다가와서 마치 몸과 같이 느끼어지는 기계로 기억될 것이다.

반면 이 휴대폰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자율성에 금이 가지는 않을지 반문하고 싶다.

필자는 휴대폰이 없다보니, 약속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 휴대폰이 있을 때에는 차가 막히고 급한 일이 있었고 등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잦은 지각으로 이어지곤 하였던 것이다. 휴대폰이 없음으로 오히려 연락 닿지 않는다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소셜 채널을 열고 실시간으로 화상/음성으로 소통가능하게 하였다. 그 덕분에 구글독스를 통한 협업 연구, 페이스타임이나 행아웃으로 화상통화 및 원격 회의 특히 최근에는 특강도 유튜브에 올리며 공유하는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되었다.

사실 굳이 할 필요가 없던 이런 일들은 아이패드, 아이패드 미니, 맥에어 그리고 휴대폰 중에서 한 가지만을 내려놓은 결과이기도 하다.

드문, 뉴미디어를 연구하는 선생이나 사이버 대학의 직원이 일을 함에 있어 휴대폰이 없음은 무슨 큰 결격 사유인 듯이 처신할 때, 우리 삶의 아날로그적 일처리와 디지털적 사고 간의 간극을 느낀다.

어쩌면 국민을 섬긴다던 전 정부나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현 정부나 사실 리더에게 권력자에게 말단 행정처리를 하는 이에게는 휴대폰으로 즉문즉답이 시원스럽지 다양한 채널로 좁쌀같은 이야기를 들어줄 여백은 없는 것이다.

사이버대학을 구성하는 대다수는 오프라인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사이버 대학의 규범과 제도 역시 오프라인의 원형을 탈피하진 못했다.

이럴 때 일수록 사이버 대학은 입시 때마다 ’오프라인 캠퍼스와 잦은 오프라인 커뮤니티 및 만남이 있다‘는 오프라인 대학 흉내내기 선전문구보다, 본질적인 경쟁력이 무엇이고 오프라인 대학과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가야할지에 대한 도전적인 질문을 스스로 하여야 할 것이다.

 

 

 강장묵 교수(고려대), 공학박사/정치학박사

                                                               (이메일 : kangjm@korea.ac.kr  mooknc@gmail.com)

                                                                URL: http://www.slideshare.net/mooknc

 

 

저자는 차이가 차별로 구조화되는 사회를 반대한다. 질투는 나의 힘이다. 염장질은 나의 버릇이다.

날마다, 창조적 조응을 통한 매혹을 그린다.

지루한 사람 곁에는 하품을, 어딘가 꼬여 부정적인 이에게는 안쓰러움을, 직급만 믿는 이에게는 거품 물방울을, 학위와 학벌을 훈장처럼 여기는 이에게는 낙엽을 건네며 산다.

하고 싶은 일만 솎아, 미래를 심는다. 느낌표가 그리울 땐 여행을 간다. 아이디어를 발견하면 글을 쓴다. 돈이 궁할 땐 특허를 낸다. 틈틈이 특강, 심사, 포럼을 하며 얇은 지식의 표상들에게 비수를 꽂는다. 사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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